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겨울방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영하의 추위로 연일 한파주의보가 내려지고 있지만, 집에만 머무를 수는 없죠. 자녀들과의 외출을 계획하고 계시는 분들께 특별한 명소를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요즘 행리단길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수원 행궁동>입니다. 행궁동 안에서도 꼭 가봐야 할 3곳을 지역주민 입장에서 선정해봤는데요. 이색적인 추억도 만들고 체험 학습도 즐기는 수원 행궁동 예술 탐방, 함께 떠나보시죠!
■ 수원 행궁동 예술 탐방① 전통 창호의 맥을 이어가는 곳 ‘창호 공방’
행궁동 예술 탐방 첫 번째 코스는 ‘창호 공방’입니다. 행궁동 벽화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창호 공방은 우리나라 전통 창호를 제작하고 그 기술을 전수하는 곳인데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4호이신 소목장 김순기 선생께서 직접 운영하고 계십니다. 이 곳에서는 직접 만들기 체험은 할 수 없지만, 다양한 문양들의 창호를 구경하고 제작 공방들을 둘러보는 색다른 경험이 가능합니다.
소목장 김순기 선생께서는 남한산성 행궁과 삼청각, 광화문, 경복궁 소주방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셨다고 합니다.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창호도 선생께서 짜셨다고 하는데요. 본인의 업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창호 기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이셨습니다.
창호 전시관에는 다채로운 예술적 색채를 자랑하는 창호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꽃창살인데요. 꽃무늬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각을 깎아서 결합해야 합니다. 게다가 반드시 목재를 요철처럼 파내 아귀를 맞추는 사개물림과 엇갈림 기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는 정교한 작업을 오직 손으로 해낸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공방 작업실에서는 창호 제작에 필요한 도구와 기계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이 전통 공구들은 선대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그야말로 백 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물건이었습니다. 외날톱, 붕어톱, 탕개톱, 잉걸톱 등 톱만 해도 종류가 다양했는데요. 지금은 편리한 현대 공구들이 있어 그 쓰임을 다했지만, 선생께서는 옛 것을 보존해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공방 지근거리에는 한옥기술전시관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보다 현대적인 공구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김순기 선생의 옛 공구들과 비교해서 살펴보니, 아이들에게 보다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 수원 행궁동 예술 탐방② 시대의 선각자, 나혜석을 만나는 ‘나혜석 옛길’
두 번째 수원 행궁동 예술 탐방지는 ‘나혜석 옛길’입니다.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화가이자 작가로 알려졌는데요. 일제강점기 당시 근대 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서 가부장적 관습에 맞섰던 인물입니다. 생의 마지막은 비극적이었던 탓에 현재 생가는 남아있지 않죠. 하지만 이리저리 얽힌 골목길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그녀의 처연한 삶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담스러운 골목길 밑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나혜석이 생전에 남긴 ‘수원 서호’, ‘스페인 항구’, ‘파리 풍경’, ‘선죽교’ 같은 작품들이 즐비하죠. 그녀를 대표하는 글인 ‘이혼고 백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햇살 아래 수놓아진 꾸밈없는 그림들이 참 아름다웠는데요. 표식만이 남아 있는 생가터에선 반대로 외로움과 쓸쓸함이 느껴졌습니다.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이자 운동가는 이미 세상을 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여전히 나혜석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부터 그녀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나혜석 생가터 문화예술제>가 활발히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또 화성행궁 미술관에서는 특별 전시로 작품 4점과 주요 연보, 어록을 만나보실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녀를 통해 당시 여성들의 삶을 잠시나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 수원 행궁동 예술 탐방③ 금박 만들기 체험과 공예품 관람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유상 박물관’
[옛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전시품들]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남문시장에 위치한 ‘유상 박물관’입니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당시 상인들이 사용했던 화폐와 전화기 등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는데요. 그 이유인즉, 버드나무가 많아 정조대왕이 ‘유경’이라고 불렀던 수원에 큰 시장이 형성됐고, 이를 ‘유상’으로 불렀기에 지금에 이르러 박물관을 지을 정도로 상인들과 관련된 유물이 많은 편입니다. 그 옛날 상인들 중엔 장사를 위해 고향을 떠난 선비 ‘유상’도 있었다고 하니, 박물관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지 않나요?
잠시 눈이 즐거웠다면, 이제 손맛을 느낄 차례입니다. 저는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금박 체험교실로 향했는데요.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금을 입히면 멋진 금박 액자가 완성되는 체험이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불취무귀 술잔도 만들 수 있죠. 불취무귀란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만 백성들이 근심 없이 술에 취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이 깃든 말이라고 합니다. 부모아이 할 것 없이 체험과 함께 옛 정신도 느끼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행궁동 초입에서 받은 지도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짧은 겨울해가 팔달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갔습니다. 하늘은 주홍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는데요. 두껍게 옷을 입어도 어깨가 움츠러드는 날씨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한겨울 추위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번 주말에는 자녀와 함께 행궁동을 방문해 예술에 얽힌 근대사를 배워보고, 고유한 전통의 멋을 만끽해 보시길 바랍니다!
[수원 행궁동 가는 길]